오랜만에 날이 맑아 산행하기 딱 좋은 날씨였다. 물론 완전히 청명한 하늘은 아니고, 어디선가 미세먼지인지, 구름인지 모를 뿌연 기운이 하늘에 얇게 깔려 있었다. 그래도 따뜻한 햇살 덕분에 기분은 가볍고, 몸은 한층 가뿐했다. 점심을 간단히 먹고 배낭을 챙겨 월출산으로 향했다.
오늘의 코스는 경포대 탐방지원센터에서 시작해 금릉경포대를 지나 경포대 삼거리까지 오른 뒤, 월출산 정상에서 바람재 쪽으로 내려와 하산하는 원점 회귀 코스였다.
탐방지원센터를 출발할 때부터 공기는 신선했고, 주위 풍경은 점점 봄의 기운으로 물들고 있었다. 금능경포대에 도착했을 땐 한참을 멈춰 서서 주변 풍경을 감상했다. 여전히 약간 뿌연 하늘이었지만, 그 덕분에 빛이 부드럽게 퍼져 나무들과 바위에 아늑한 느낌을 더해줬다.
경포대 삼거리에서 월출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처음에는 완만했으나 모든 산이 그렇듯,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생각보다 가팔랐다. 그래도 여유있게 한걸음 한걸음 옮기다 보니 점점 머리가 맑아지고 마음이 정돈되는 기분이 들었다. 정상에 올라서니 주변 산자락들이 뿌연 하늘 아래 부드럽게 겹겹이 펼쳐졌다. 그 풍경을 담고 싶어 핸드폰을 꺼내 몇 장 찍었다. 사진 속 하늘은 쨍하지 않았지만, 그 나름의 분위기가 있었다.
정상에서 잠시 숨을 돌린 뒤 바람재 방향으로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내려오는 길은 조금 거칠었지만 그래도 경치가 좋아 크게 힘들진 않았다. 내려오는 하산길에 얼레지 군락을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쪼그려 앉아서 몇장, 구부리고 엎드려서 몇장을 찍었다.
오늘은 뭔가 뚜렷하진 않았지만 그래서 더 인상 깊었던 하루였다. 뿌연 하늘, 조용한 산길, 그리고 오랜만에 들이마신 봄 내음까지. 사진 몇 장에 그 감동이 다 담기진 않겠지만, 그래도 그 순간을 기록해본다.
2025.03.26